포뮬러 원(F1)에서 ‘차빨’은 만년 떡밥 주제다. 동시에 무적의 무논리 치트키와 같아서 차빨이라는 단어 하나만 들이밀면 모든 논쟁에서 손쉽게 승리할 수 있다. 정확히 짚고 넘어가면 본인 스스로 지지 않았다고 정당화하는 정신 승리에 불과하긴 하다. 필자는 그들을 설득할 자신도 없고 더욱이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레이스카의 성능이 드라이버의 퍼포먼스와 성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진흙탕 싸움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어느 쪽도 편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최근 한 F1 전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차빨 논쟁이 곪고 곪다 결국 터져버렸다. 일부 누리꾼들이 올 시즌 좋은 성적을 내는 드라이버들과 한때 잘나갔던 선수들에 대해 레이스카의 성능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깎아내리면서부터 싸움은 시작됐다.

올 시즌 메르세데스 W13의 퍼포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월드 챔피언 7회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도 차빨 드라이버라는 오명을 피해 갈 수 없었고 현재 챔피언십 리드를 이끄는 페라리의 샤를 르클레르도 피하지 못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회 연속 월드 챔피언 왕좌에 오른 세바스티안 베텔 역시 키보드 워리어에 수모를 겪었다.    

일정 부분 동감한다. 모터스포츠는 우사인 볼트처럼 맨몸으로 때우는 육상 경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올림픽 종목처럼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아닌 온갖 최첨단 시스템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교한 기계를 누가 더 얼마나 세련되게 다루는지 테스트하는 것에 가깝다. 그나마 비슷한 카테고리를 찾자면 승마랄까. 정상급 기량의 승마 선수만이 명마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지 않은가. 네 바퀴 달린 자동차라는 점만 다를 뿐 레이스 드라이버 역시 마찬가지다.

머신의 성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건 F1의 위대한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세나는 톨만 모터스포츠에 입단하면서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형편없는 레이스카를 준다면 이적할 것이고 그걸 막는다면 은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F1에 막 데뷔하는 신인이 내뱉을 만한 발언은 아니지만 그만큼 레이스카의 성능이 경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예다.  

F1에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다. 자동차 경주 대회라면 차량의 성능이 경기의 양상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모두 같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클래스에서 각 팀의 레이스카 성능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경기 결과에 따라 출력, 차고, 무게 등을 제한하는 BoP(Balance of Performance)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빠른 드라이버가 위닝카에 오르는 건 불변의 진리라는 사실이다. 

F1은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단언컨대 운 좋은 드라이버가 우연히 한 시즌 정도는 빠른 레이스카를 탈 수 있을지 몰라도 실력 없이 정상에 오르는 건 100% 불가능하다. 1950년부터 지금까지 34명의 월드 챔피언이 탄생했지만 그들 모두 최정상급 레이서였다. 즉 각 컨스트럭터와 드라이버들이 이룬 업적을 단순히 차빨로만 치부하기는 힘들다는 소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F1: 본능의 질주’ 시리즈 덕분일까. 모터스포츠 후진국인 우리나라에서도 F1의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까지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본능의 질주를 시청하고 각 컨스트럭터의 공식 SNS 등을 통해 카를로스 사인츠와 조지 러셀 등 F1 대표 미남들의 소식을 접하고 있다. 

새내기가 늘었다. 참 반가운 소식이다. 대부분 입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리숙한 모습이지만 F1 이벤트를 함께 즐기고 소통할 수 있는 더 많은 사람이 생겼다는 건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고인물들에게 전하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새로 유입된 팬들의 못마땅한 부분도 너그럽게 포용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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